[책 후기]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Why Fish Don't Exist (독후감, 줄거리, 느낀점)
서론
22년 여름 경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교보문고 베스트셀러에 전시되어 있던 이 책은 제목부터 흥미로웠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제목을 읽자마자 많은 질문이 떠올랐다. 세상에나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니! 이런 말을 제목에 걸어놓을 만큼 확신이 있다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무엇을 근거로 도대체 이 책의 저자는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그러면서 책의 제목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도 했다. 단지 독자들을 도발하기 위한 말이라고 해도 나와 비슷한 꽤 많은 이들이 흥미를 갖게 되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하여 당시 책을 구매하게 되었고 책을 완독하였다. 당시의 나는 이 책이 꽤나 어려웠다. 뭔가 핵심을 잘 짚어내지 못한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아주 잔잔한 감동의 순간들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기억이 확실하지 않지만 등장인물들에게 이입된 감정들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역시 이 책을 관통하는 무엇을 잘 이해하지 못한 듯한 기분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렇게 약간은 찝찝한 마음을 뒤로한 채 책장 속에 묻어 놓았다.
그렇게 2년이 지난 지금, 독서 모임의 선정 도서로 이 책이 지목되었다. 그때 느꼈던 감정이 잔잔하게 피어 올랐다. 그 찜찜한 마음 뒤의 순간순간의 여운이 떠올랐다. 그렇기에 기분 좋게 이 책을 다시 읽어볼 수 있었다.
작가
룰루 밀러 (Lulu Miller)
줄거리
책의 주인공은 어렸을 적 아버지와의 대화로 생긴 가치관에 평생을 고통받으며 살아간다. 어린 주인공은 아버지에게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지 묻지만 아버지의 답변은 차갑기 그지없다.
주인공은 이 사건을 시작으로 매 순간 혼돈에 휩싸여 살아간다. 혼돈만이 유일한 지배자이며 그것이야말로 우연히 우리를 만든 것이자 언제라도 우리를 파괴할 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말에 주인공은 계속 혼돈 속에서 질서가 있다고 믿고자 한다. 무언가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인생에 하나의 질서가 자신의 삶을 구원해 줄 것이라고. 그러다 “데이비스 스타 조던”의 자서전을 우연히 읽게 된다. 조던은 평생 동안을 세상의 모든 것에 질서를 부여한 사람이다. 조던은 분류학자로 어렸을 때부터 식물에 관심이 많았다. 식물을 유심히 관찰하고 그것에 이름을 부여하는 것을 좋아했다. 별자리를 보며 이름을 익히려고 했고 계속해서 세상에 질서를 부여해 나갔다. 성인이 된 조던은 나중에 어류에 대한 질서를 계속해서 확립해 나갔다. 주인공은 이러한 조던의 모습을 보며, 어떻게 이렇게 확고한 질서를 자신의 삶속에서 부여해 나갈 수 있었는지 궁금해한다. 이것이 자신의 공허한 마음에 실마리가 되어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조던의 이 질서 속에는 자기기만이라는 것이 숨어있었다. 그 무엇도 의심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밀고 나가는 그의 신념이 결국 질서라는 이름 뒤에 숨어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깨달은 주인공은 망연자실하여 결국 모든 것은 혼돈인 것일까라는 의문을 버리지 못한다. 조던의 자기 확신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조던이 연구하던 당시 주요하게 퍼져있던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의 스승인 아가시의 논리인 사다리 즉, 계층구조(생명의 우열이 있다)를 받아들인다. 결국 조던은 우생학을 옹호하는 사람이 되어 사람의 우열을 나누고 열등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생식을 하지 못하게하는 법안을 통과하는데 기여하게 된다. 이로 인해 수많은 피해자들이 생긴다. 열성 유전자로 판정 받은 사람들은 아이를 갖을 수 없게 된다. 이 열성의 기준조차도 그 시대의 보편적 가치에 따라 나뉘어졌다. 열성의 기준은 동성애를 하는 사람에게 까지 퍼졌다. 주인공은 그 피해자인 애나를 만나게 된다. 애나는 19살에 수용소에 갇혀 불임화를 당한다. 그러한 비극적인 삶에서도 자신의 짝인 메리를 만나 행복하게 살고있다. 이 모습에 주인공은 “어떻게 계속 살아가시는 거에요?”라고 물어본다. 애나와 메리는 서로에게 의미가 되어 살아가고 있었다. 주인공은 이 모습에 새로운 사실을 깨닫는다.
느낀 점
이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혼돈 또한 하나의 관점일 뿐이라는 것.
이 책을 쭉 읽어보면 혼돈과 질서에 대한 양립이 쭉 긴장감을 주며 마지막까지 오게 된다. 혼돈은 근대로부터 현대까지 주요하게 언급되는 허무주의와 매우 밀접하다. 신의 붕괴와 함께 다양한 하무주의 철학이 시대를 지배하며 인간의 삶의 의미가 없어진다. 예전에는 삶과 관습이 인간의 삶을 정해줬다면, 허무주의 앞에서는 그 무엇도 정해진 것이 없는 우주 속에서 떠돌아 다니는 먼지와 같은 존재로 바뀌어 버린다. 그렇기에 공허함에 많은 사람들이 의미를 찾는 여정을 떠난다. 하지만 결국 의미는 없었다. 질서를 찾으려 한 자들은 자기 모순 앞에서 좌절했다.
좌절은 결국 진정한 질서가 있다는 믿음으로부터 오게 된다. 진정한 허무주의는 스스로 신이 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 말인 즉,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그 무엇도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주인공이 깨달은 것처럼, 그 모든 것도 하나의 관점일 뿐 정해진 것은 없는 것이다. 삶이 혼돈이라고 정하는 것도, 삶에 질서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도 하나의 관점일 뿐. 우리에 삶에 분명 의미가 존재한다. 많은 철학자들이, 그리고 세상이 삶에 의미가 없다고 소리쳐도 그게 무슨 소용인가. 내 삶 주변에는 수많은 의미들이 존재하는데 말이다. 그 모든 것은 내가 하나씩 정해 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그것이 설령 무너지고 의미 없는 것이라도 매 순간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 그것이 내가 사는 이 세상에서 스스로 신이 되는 방법일 것이다.
주인공의 깨달음에서 조금은 멀리온 감이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수많은 의미들 속에서 그 모든 것이 의미가 있고 의미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결정하고 선택하는 것은 바로 내 안에서 이루어진다. 아주 작은 곳에서 의미를 찾기도 하며, 아주 큰 곳에서 의미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지금 바로 내 앞에 있는 인생이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총평
하나의 질서 속에서 답답함을 느꼈던 이나, 커다란 허무 속에서 절망하던 이에게 포근함을 건네어주는 그런 책이라고 생각했다. 인생의 나날에서 수많은 의미와 무의미들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이들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책이다.
(총점 4.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