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라 하면 인생에서 한번쯤은 읽어봐야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그런 책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쉽게 접근하기 힘들고, 이해하기도 어려운 것이 실상인 것 같다. 그렇다보니 거리감이 들어 쉽게 논어라는 책을 읽어보기가 겁이난다.
그러던 중 논어 에세이라는 장르의 책을 발견했다. 뭔가 논어를 쉽게 접해볼 수 있는 기회일 것 같아 구매하여 읽어보았다. 이 김영민 교수님의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논어에 대한 오해를 다시 잡아주는 이정표와 같은 책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어떤 문장들이 감명 깊었고 느낌점은 무엇인지 한번 나눠보고자 한다.
매니페스토: 생각의 시체를 묻으러 왔다.
세상을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그에 따라 가치는 항상 변해왔고 앞으로 어떤 미래가 우리에게 주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느 것이든, 그것이 설령 한 시대를 통달한 이야기라고 해도, 절대적으로 쫓아갈 수 없는 노릇인 것이다. 그곳에는 답이 없다. 다만 그 답을 관철하기 위한 다양한 시각이 담겨 있을 뿐이다.\\
모순과 함께 걸었다
인간의 삶 또한 텍스트라면, 텍스트는 모순과는 떨어 질 수 없는 그런 사이가 아닐까. 살면서 모순을 만나면 불편하여 그것을 고치고자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다. 이상과 질서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삶은 모순일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며 나아가는 것이 우리가 텍스트를 대하는 자세가 아닐까.
신의 가호에 회의를 품게 된 시대의 사랑 (인 仁)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다양한 정치 문화 속에서 우리는 인간상을 규정할 수 있는 것일까. 사람의 생각을 어떻게 하나의 마음으로 규정해 나갈 수 있을까. 같은 명목의 마음에도 다양한 의도가 가미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면, 그것을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미워하라, 정확하게 (정 正)
누군가를 제대로 사랑하고 미워할 수 있을까. 사랑과 미움을 가능하게 하는 그 기준은 과연 타당할까? 투사하지 않고 막연하게 대상을 흩트려 놓지 않고, 그 대상을 온전히 상대할 수 있을까?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어떠한 것일까. 많은 고민들을 늘어놓더라도 확신하기가 항상 어렵다.
사랑이라는 것과 미움이라는 것을 제대로 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시작해야 하는가. 수많은 생각으로부터 돌아보건대, 그것을 가능하게 하려면 먼저 나 스스로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두 가지는 사뭇 다른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같은 방식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두 가지의 근본은 인정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정이라함은 받아드리는 것. 그것을 소유하는 것. 감정을 잠시 접어두고 그것을 직시하는 것. 이러한 것이 내가 생각하는 사랑하는 또는 미워하는 방법의 첫걸음이지 않을까 고민해 본다.
삶이라는 유일무이의 이벤트 (욕 欲)
삶이라는 유일무이의 이벤트라는 제목은 심금을 울리는 말인 듯하다. 단 한번뿐인 기회, 절호의 찬스와 같은 뭔가 가벼운 뽑기 당첨문구와는 차원이 다른 문장으로 느껴진다.
유일무이한 삶이라는 이벤트에서 과연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여러 행태를 고민해보아도 끝까지 좋아하는 것을 배우고 즐기는 것이, 그 유일무이한 삶에 가장 어울리는 선택이 아닐까 한다.
아직 얼마 지나지 않은 삶의 중턱에서의 생각이기에 이것이 얼마나 성급한 선택일지는 모르겠으나, 이러한 생각으로 꾸준히 지나가다 보면 또 다른 생각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알다, 모르다, 모른다는 것을 알다 (지 知)
스스로를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는 것은 모름지기 고등교육을 받은 이들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요즘은 유튜브만 보아도 이러한 영상들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스스로를 성찰하는 것은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다.
스스로를 성찰하기 위해서는 결국 어떠한 기준을 통해서 자신의 상태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그 기준은 다양한 정보와 경험으로부터 만들어질 것인데, 그것 조차도 하나의 잣대일 뿐이기에 쉽사리 의지할 수 없다. 그렇다면 결국 다양한 기준들을 들여와서 비교해보고 점검해야 할텐데,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사실은 바쁘단 것도 핑계일 것이다. 집에 와서 과부화된 자신의 머리를 식히고자 유튜브부터 키는 나를 보고 하는 말이다. 알고자하면 더욱 아득해지는 그런 경험 때문에 더더욱 성찰은 쉽지가 않다.
그래서 쉽게 성찰하는 방법은 매사에 이러한 마음가짐을 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경험들을 내 자신에게 대입하고 성찰해서 자신의 현 상황을 깨닫는 것이다.
빡센 삶, 각오는 돼 있어? (효 孝)
국가적 개입으로 사회가 조절되는 것이 아닌, 개인 스스로가 힘을 가지고 판단하여 행동하는 상태를 계속 이야기 하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사회가 아닐까 싶다. 개개인의 지성의 함유가 높아지고 책임에 대해서 올바르게 가져갈 때 사회가 유지되고 나의 삶도 균형이 생기지 않을까.
하지만 정말 이상적인 이야기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더 나은 실패를 위해서는 이러한 행동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부러우면 지는 거, 아니 지배당하는 거다. (위 威)
선망한다는 것은 결국 지배당하고 있다는 것이라는 그런 예시가 와 닿았다. 선망하는 마음이 모여 그것이 권력이 되는 것임을 생각해본다. 모두가 염원하게 되는 그것은 결국 힘이 생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러워하는 것은 나쁜 것일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스스로에게 좋지 않다고 판단한다. 다만 부러운 마음을 아예 갖기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선망과 부러움을 쫒아야할 대상으로서 바라보지 않고, 다른 무언가로서 받아드리면, 그것에게서 조금은 자유로워 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성급한 혐오와 애호를 넘어
유교는 이미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렸다. 본질은 없어지고 무수히 많은 주석들과 관념들이 엉켜버린 실타래와 같다. 이것을 억지로 당겨 더욱 풀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 바로 성급한 혐오와 애호지 않을까.
이러한 내용은 단순 유교에만 해당하지 않는 것 같다. 우리시대에 널려있는 보편적인 것들에서 모두 찾아볼 수 있는 듯하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본질을 찾아서 떠나는 여행을 시작하기엔 너무 본격적이면서 부담스럽기 그지없다. 혹은 실용적이지 못하며 너무 이상적이기까지 하다.
책에서 말하기론 그 본질을 찾아 떠나는 것 이외에서 우리가 현재 어떤 이유로 이 본질을 사용하려 하는지에 대해 고민해보면 더 좋을 것 같다고 말한다. 한번 고민해보면 재밌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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